프로그램 노트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하퍼’(제시 버클리)는 충격과 고통에서 회복하고자 한적한 시골의 그림 같은 저택을 빌린다. 불편한 농담을 하는 집주인(로리 키니어)의 안내를 거친 후, 결국 혼자의 한적함을 찾은 ‘하퍼’. 하지만 고즈넉한 전원의 산책은 벌거벗은 정체불명의 남자와 맞닥뜨리며 악몽으로 바뀐다. 사색과 고독, 아름다움을 감상할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 동네의 남자들은 다 똑같다(!) 능글맞은 집주인이건, 가해자를 방관하는 경찰이건, 단죄하는 신부이건, 자기 요구만 주장하는 어린 녀석이건.
잔잔한 일상 속에 불쑥불쑥 충격을 주는 공포들이 간헐적으로 등장하다가, 어느 순간 영화는 다양한 남자들의 모습과 군데군데 깔려 있는 상징에서 감독의 날카롭고 신랄함을 맛 보여준다. 결말을 향해 치달으면서 <멘>은 점층적으로 미친 바디호러의 향연을 펼친다. 신체의 변형을 통해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남자의 모습은 아무리 저항해도 소멸되지 않는 가부장의 힘 같기도 하다. <멘>은 <엑스 마키나>(2015)와 <서던 리치: 소멸의 땅>(2018)의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역작이자, 영화제의 어느 작품보다도 가장 이상하고 독창적인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김영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