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정신은 황폐해지고 가족은 해체되어 간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폭력과 섹스가 난무한다. 이럴 때 예술은 타락한 사회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과연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사회의 발전으로 극대화된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인간의 '귀거래사'이며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노부부는 고난에 가득 찬 40년을 함께 살아오며 인생의 황혼인 70대를 맞이했다. 자식들이 이민 가고, 자살하고, 가출했어도 원망 한번 해본 적이 없다. 남편은 전직 장성, 쿠데타 참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옷을 벗은 후, 하나밖에 없던 집마저 아들의 부도로 잃게 된다. 갈 곳을 잃은 노부부는 어쩔 수 없이 따로 따로 양로원에 들어가게 된다. 남쪽과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양로원에서 연명하는 노부부의 유일한 희망은 서로의 편지를 기다리는 것과 1주일에 한번씩 종로 탑골 공원에서 만나는 것이다. 겨울이 다가와 부인의 지병인 심장병이 도지자 남편은 탑골 공원에서 만나는 것을 미루려고 한다. 부인의 고집으로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공원 벤치에서 만난 두 사람. 한없이 남편을 바라보던 부인은 남편이 군인시절 받았던 훈장을 꺼내 남편의 가슴에 달아준다. 조용히 남편을 껴안은 부인은 움직일 줄 모른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버린 부인을 포옹한 남편의 머리 위로 흰 눈이 하염없이 쌓여간다. 거장 이두용 감독이 핵가족화로 삭막해져만 가는 사회의 가치관과 점차 대두되는 노인문제를 진지하게 통찰하고자 노력한 이 영화는 <피막>과 <물레야 물레야>로 아름다우면서도 잔인한 한국적 영상을 세계에 소개한 감독의 냉철하고도 섬세한 영상감각이 화면 곳곳에 묻어나고 있다. (정초신)